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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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4 -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계속 읽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될 정도로 힘이 들었다. 책을 손에서 놓고 싶었지만, 그만 읽는 것 자체가 죄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끔찍하고 비참하지만,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원제는 “The Rape of Nanking” 으로, “난징의 강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3712 13, 일본 군대에 의해 중국 난징이 함락되고 나서 6주간 자행된 대학살 사건에 대해 다룬 책이다. 난징 함락 후 6주간, 최소 15만 명에서 최대 35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된 이 엄청난 사건을 지금까지 몰랐다니, 역사에 정말로 관심도이해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도록이 나오는데, 두어 페이지 넘기고 완전히 질리고 압도당했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페이지 하나하나 넘기기가 힘들어서, 휴대폰을 뒤집은 채로 페이지를 넘기고 살그머니 들추어 보면서 하나하나 보았다. 총검으로 사람을 찌르는 장면, 일본도로 사람을 참수하는 순간 목이 떨어지는 장면, 참수된 목들이 나란히 전시된 모습, 강간당한 뒤 살해당한 여자의 모습 등, 일본군이 살해한 시신들 수십, 수백 구가 쌓여 있는 장면, 나중에 발굴된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유골들.

글로 쓰여진 만행의 기록도 사진 못지않게 처참했다. 목이 잘렸지만 척수까지 잘리지는 않아서 겨우 목숨을 건진 채로 스스로 병원을 찾아 온 여자의 이야기, 산 채로 내장을 꺼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 이야기, 두 일본군 장교의 목 베기 시합 (한 사람은 105, 한 사람은 106명을 죽였다고 한다), 산 채로 허리까지 사람을 파묻고 사냥개들의 먹이로 삼은 사건 등등, 방식의 잔인함에 있어서도 다른 집단학살 못지 않은 끔찍함을 보여주고 있다.

집단적인 대학살의 역사가 난징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사례는 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망자의 숫자만으로 봐도 다른 만행과 학살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고, 600만명의 유대인을 죽인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도 최소한 그 기간에 있어서는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었는데, 난징대학살은 불과 6주 동안 최소 15만에서 많게는 35만 명이 살해된 유례없는 만행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끔찍한 방법으로 죽어갔는지만을 서술했다면 이 책의 가치가 이렇게까지 인정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서슴없이 죽일 수 있었던 일본군의 심리가 대체 무엇이었는지 파고든다. 직접 죽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심리를 누가 정확히 서술할 수 있겠는가마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가치관과 전근대적인 교육 방식,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외세에 의한 수치와 타국에 대한 적대감 등과 연관지어 학살자의 집단적 심리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도록 방치해 둔 장제스의 군대도 일부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총통 장제스와 난징을 사수하도록 위임받은 사령관 탕셩즈 사이의 암투로 인해 군대는 하나로 결속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겉으로는 난징을 사수할 것처럼 행동해 놓고서 속으로는 플랜 B를 세우고 있던 장제스의 전략 때문에 난징은 충분한 군비와 물자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전투를 치를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련되지 않았고 서로를 믿지 않은 군인과 사령관들 등은 이 도시를 일본군의 마수에 넘겨줄 수밖에 없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끔찍한 만행이 저질러지는 동안에도 무고한 시민의 학살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도운 의인들의 기록이 나온다. 나치 당원으로서 난징안전지대를 건설한 존 라베는 저자에 의해 중국의 쉰들러라고 칭해진다. 난징에 남은 유일한 외과 의사 로버트 윌슨 (그는 일본군에 의해 강간당하고 목이 거의 다 잘린 채로 스스로 병원에 온 여인을 치료한 사람이다), 진링여자예술과학대학 학장으로서 수많은 난징 시민들을 학교 안에 보호하려고 애썼던 윌헬미나 보트린의 활약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눈 앞에 두고도 일본 정부와 우익 인사들은 여전히 난징대학살을 부인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태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협박을 당하다가 이로 인한 우울증을 이기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난징대학살이 있었던 그 때도, 8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일본은 진심이 담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뉴스와 신문을 통해, 평화헌법을 뜯어고쳐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고자 하는 야욕, 돈 몇 푼 쥐어주고 피해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겠다는 천박한 의도를 매일 접하고 있다.

역사를 사실로서 인정하고 사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앞으로도 같은 죄악을 다시 저지르겠다는 의도의 표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감추어진 일본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후련한 책이기도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신문과 뉴스를 보면 한숨과 절망을 금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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