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의 독서노트

클루지 (5) : 왜 해로운 줄 알면서도 도박에 빠질까?

데이빗_ 2023. 2. 1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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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술담배를 하거나, 도박에 빠지는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해로운 것이라면, 본성 자체가 그것을 거부하도록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예컨대 상한 음식을 먹고 구역질을 한다거나, 해충을 보고 피하려는 반응처럼 말이지요. 왜 어떤 위험은 회피하면서도, 진짜 해로운 것들에 대해서는 탐닉하는 것일까요?

이 장에서 저자는 우리가 유쾌하고 쾌락적인 것이라고 무언가를 느끼는 중추가 상당히 엉성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음악이나 미술같은 예술로부터 쾌락을 느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약과 담배 도박과 같은 극히 해로운 것으로부터도 쾌락을 느끼게 되죠.

우리의 쾌락 중추가 정교하게 조율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박을 함으로써 적절한 긴장감이 생기고 도파민이 나오는것인데, 이는 사실 선사시대 때 위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사냥감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잡아채기 위해서 필요한 반응인 것이지요.



저자는, 우리의 선조체계와 감각 체계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유익한 것을 추구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때그때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얼기설기 진화되어 온 선조 체계가 우리를 파멸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것이죠.




저자는 우리가 행복을 평가하는 잣대 자체가 상당히 형편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와 미래의 행복을 평가하는 데 매우 서툴다는 데서 드러나죠.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을 손에 넣고 나면 기대했던 것만큼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원하는 직장에 지원했다가 떨어진다거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만큼 크게 좌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리 두려워하가도 하죠. 미래의 불행을 지금 평가할 때는 그렇게 지레짐작하지만, 실제로 그 환경에 처하고나면 그럭저럭 적응해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죠.

우리는 쾌락을 평가하는 데는 굉장히 서툰 기준을 가지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안에서 그럭저럭 적응함으로써 극도의 고통 또는 극도의 쾌락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두뇌는 생각보다 환경이 잘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의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촉발하는 역할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즉 미래의 행복과 불행을 과대평가하는 형편없는 미래 예측 능력이, 불행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도록 우리 행동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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